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즐거운 사라 음란물 지정 및 탄압 사건 (문단 편집) === 유죄 선고 이후 === 이 사건으로 인해 마광수는 당시 [[연세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임되었다가 1998년에 다시 교수직에 복직하였지만 <즐거운 사라>는 아직도 재판이 허용되지 않는 금서[* 시장에 극소수 풀렸던 1992년 초판본만이 수집가들 사이에서 괴랄한 가격으로 거래되는 실정이다.]이며 마광수는 국문학계에서 [[왕따|아웃사이더]] 취급을 받아 전공 수업을 하거나 연구에 매진하지 못하고 교양 강의만 하는 교수로 좌천되고 말았다.[* 마광수도 강의 시간에 대놓고 다른 [[국문과]] 교수들을 깠다. 다만 필화 사건 이후 해임 및 복직과정에서 본인을 지지하는 교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본인의 개인주의를 반성하는 시간도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즐거운 사라> 필화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으며 [[이현세]] 화백의 <[[천국의 신화]]>와 함께 '예술과 외설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가?' 하는 답 없는 논쟁을 사회 전반에 일으키기도 하였다. 훗날 어떤 열성 팬이 마광수의 홈페이지에 <즐거운 사라>를 전부 손으로 쳐서 올렸다가 2007년에 마광수 본인이 [[약식기소]]되기도 하였다. '달라진 시대상에 비추어 봐도 음란물이기는 하지만 과거 정식기소했을 때보다는 음란성이 약하다'는 것이 약식기소의 이유였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1556252|#]] 마광수는 이 사건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았는데 어처구니없게도 <즐거운 사라> 때문에 전과가 두 개나 생긴 것이다. 이때 마광수는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이 책 하나 때문에 불거진 두 사건으로 생긴 전과는 마광수가 정년퇴임한 뒤 연금조차 못 받게 만들었고 퇴임한 지 1년 뒤 [[자살]]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yfUzGqkCYs&t=1021s|2009년 인터뷰]] 마 교수는 [[2016년]] 강단에서 퇴임하였다. 전과 때문에 연금 수급에 문제가 있어[* 다만 징계를 받아도 50% 정도는 수급을 받은게 있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와중에 [[우울증]]까지 심해져 결국 [[2017년]] [[9월 5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마광수가 세상을 떠나면서 전 아내측도 이 사건에 대해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하기도 하였다. 마광수는 이 사건에 대해 "10년 정도 지나면 어처구니 없던 해프닝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예언한 바 있다. 그 말대로 10년이 지난 [[2002년]]과 이후를 기준으로 야만적이었던 그 시절을 상징하는 비웃음거리로 여겨지고 있다. [[2010년대]]에 들어서는 <즐거운 사라>에서 묘사되는 삶의 태도는 소설 속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영역에서 등장해도 별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성적인 개방이 이루어졌지만 마광수를 유죄로 만든 법조항은 아직도 살아 있으며 그 판결도 전원합의체로 변경되지 않았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1210004006|#]] 그리고 <즐거운 사라>는 재출판되지 않고 있다. 재출간되려면 유죄 판결을 재심을 통해 뒤집어야 하는데 마광수 본인이 상술한 '홈페이지 사건' 당시에도 항소를 아예 하지 않았을 정도로 법정 다툼에 지쳐 있었기 때문에 요원한 일이었고 결국 재심하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앞으로도 <즐거운 사라>를 정식 출간물로 보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